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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녕리당

    김녕리에는 당이 여럿 남아 있다.
    큰당, 궤눼깃당, 노모릿당, 남당하르방당 모두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1. 큰당(본향)

    큰당은 김녕중학교 동쪽 속칭 '사장빌레'에 위치한다. 사장당이라고도 했다.
    팽나무를 신목으로 삼고 있다.제단과 제장 바닥은 모두 시멘트로 되어 있다.
    담은 잘 다듬은 자연석을 야트막하게 쌓은 뒤에, 그 틈새를 발라 마무리했다. 출입구 왼쪽 담에 "1973. 7. 11. 한임생 목돈단" 이라고 새겨 놓았다.당시 매인심방이었던 한임생이 당을 새롭게 단장한 것으로 보인다.

    궷문은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강남 천자국 셋 아기 관세전 부인'을 모시는 당이다.
    이 신은 김녕 사람들의 생산 물고 호적을 관장한다. 제일은 1월 13일, 14일(대제일), 7월 13일, 14일(마불림제), 9월 13일 14일(시만국대제) 등이다. 당제는 3 4년에 한번 거행한다.

    당제를 올리는 시간은 정월 13일 저녁과 14일 새벽 이른 아침이다.
    매인심방은 세습무인 여무 한옥녀이다. 제물은 메 1그릇, 돼지고기, 바다 고기, 돌래떡, 과일 등이다.
    원 내용은 주로 자손의 번창과 곡식의 풍등에 대한 것이다.

    2. 궤눼깃당

    이 당은 자연적으로 형성된 굴 안에 있다. 굴 안에 잡석을 쌓아 모아 제단으로 삼고 있다.
    제단 이외에 어떠한 설비도 되어 있지 않으며, 지전이나 물색도 걸려 있지 않다.
    굴밖에는 커다란 팽나무가 두어그루 있다. '궤눼깃한집'을 모시는 당이다. 제수로 돼지 한 마리를 삶아서 올린다.


    ① 위치 : 큰당(본향당)에서 약 500m 남쪽에 있다.

    ② 형태 : 입구 쪽에 늙은 팽나무 신목이 있고 그 곁은 깊은 굴로 되어 있다.
                  굴의 입구 쪽 높이는 165㎝, 폭이 9m, 길이는 큰당 앞쪽으로 터졌다 하니 약 500m 되는 셈이다.
                  과거에는 이 굴속에서 굿을 했다 한다.

    ③ 제신(祭神) : 궤눼깃한집

    ④ 신화(神話) : 본풀이에 의하면 이 당신은 교래리 당신 '소천국'과 '금벡조' 사이의 여섯째 아들이라
                            한다. 이 아들이 행동이 불효하므로 석함에 담아 동해에 띄웠더니 동해 용왕국에 들어가
                            용왕의 막내딸과 혼인하고 제주에 들어와 이 당신이 되었다는 기다란 유래담이 있다.

    ⑤ 제일(祭日) : 일정한 제일이 없다. 택일.

    ⑥ 제물(祭物) : 이 당신의 필수적인 제물은 돼지 한 마리를 물도 한 점 아니 덜어서 올리는데 특징이 있다.
                            그래서 이 당신에 대한 제의를 '돗제(豚祭)'라 한다.

    ⑦ 제의(祭儀) : 40 50년 전까지는 당에서 '돗제(豚祭)'를 했는데, 지금은 보통 집에서 하고 당은
                            제장(祭場)으로서의 기능을 잃고 있다.
                            현존하는 '돗제'의 기능은 집안의 행운을 빌기 위하여, 집집마다 1년 1회 또는 3년에 1회씩
                            하고, 질병 기타 불운한 일이 이 당신에게 걸린 때문이라는 점괘가 났을 때, 또는 대소상,
                            결혼잔치 등 돼지를 잡았을 때 우선 이 신에게 제의를 하고 고기를 먹는다.
                            제의의 형식은 돼지를 잡으면 다른 방에 고기를 놓아 문을 닫아 놓고 본향당신에의 제상을
                            차려 기원한 후, '맑은 음식을 잡수시는 본향한집님은 잘 대접받았으니 백지 가리메를 합니
                            다."고 말하여, 백지로 그 상을 가리우고 옆에 상을 차려 모든 제물과 돼지 고기를 올려서
                            이 궤눼깃당신에 제의를 한다.

    3. 성세깃당

     김녕해수욕장 입구에서 남서쪽으로 300여m 가량 떨어진 지점에 있다.
    자연석을 한 줄로 높이 쌓아 제장을 장방형으로 에워 둘렀다. 제단은 돌을 쌓은 뒤에 시멘트를 발라 마무리했다. 좌우에 궤가 하나씩 마련되어 있다.
    제단 뒤에 자그마한 동백나무 두 그루가 있는데, 이것을 신목으로 삼고 있다. 그 뒤쪽 담에 지전과 물색을 걸어 두고 있다. '동이용왕 말잣아'을 모시는 당이다. 이 신은 동김녕리의 어선 해녀를 관장한다. 제일은 3월 8일(생신일), 매월 1일, 8일, 18일이다.
    본풀이가 『사전』과 『무가』에 실려 있다. 이 당에서는 특이하게도 제일에 따라 굿을 맡는 심방이 다르다. 1월에는 김윤보, 3월에는 문순실, 7월에는 문순실의 모친, 9월에는 문순덕 심방이 맡는다.


    ① 위치 : 마을의 동쪽에 떨어져 있다.
    ② 제신(祭神) : 동해용왕 막내아들로 어선과 해녀를 관장한 당신이다.
    ③ 제일(祭日) : 3월 8일 생진일(生辰日), 매월 8일 또는 18일.
                            3월 18일날은 '물굿' 또는 '좀수굿'이라 하여 어부와 해녀의 풍어를 위한 굿을 한다.
    월 18일날은 '물굿' 또는 '좀수굿'이라 하여 어부와 해녀의 풍어를 위한 굿을 한다.
    ④ 제의(祭儀) : 제의는 어촌계에서 관리 운영하며 제차(祭次)는 애월읍 애월리 해신당 굿과 대동소이하다.

    4.  노모릿당

     서김녕리 남흘동 서쪽 주택가에 있다. 팽나무 아래 시멘트로 간단히 제단을 마련하여 당으로 삼고 있다. 제장의 주위에는 자연석을 높이 170cm 가량으로 에워 둘러 울타리를 마련했다. 지전이나 물색은 전혀 걸려 있지 않다. '강남천자국용녀부인'을 모시는 당이다.

    이 신은 피부병 복질을 관장한다. 달리 자원당이라고도 한다.
    제일은 매월 매 7일이다. 제수로는 생복, 소라, 보말 등을 쓴다. 어린아이당, 허물당이다.
    15세 미만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1년에 세 차례 이 당에 가서 비념한다. 비념을 한 뒤에는 사기 그릇을 깨고, 아기구덕을 버리기도 한다.

    5. 남당/하르방당

    서김녕리 서쪽 속칭 '영등물고개' 바닷가에 있다.
    미륵돌을 가운데 모시어 신체로 삼고 그 앞에 잘 다듬은 자연석을 포개어 놓아 제단으로 삼고 있다.
    잘 다듬은 자연석으로 일차 울타리를 쌓았고, 다시 바닷가 쪽으로 한 줄로 견고하게 더 둘러쌓았다. 안쪽 울타리의 높이는 60cm 가량되고, 바깥쪽 울타리는 높이가 2m에 이른다. 신목은 '쒜닥낭'(예덕나무)이다.

    '서문하르방, 은지미륵' 2위를 모시는 당이다. 제일은 정해져 있지 않으며 택일해서 다닌다. 일곱자 걸렛배, 지전, 명실 등을 바친다. 기자(祈子)를 하거나 득남을 기원하면 효험이 있다고 전하다. 매인심방은 따로 없다. 김녕리 주민 일부가 다닌다.
    이밖에도 김녕리에는 한개당, 세개당이 있었다 한다. 한 개당은 서김녕 바닷가 속칭 한개에 있던 당이다.
    세개당은 동김녕 멸치어장인 속칭 '자자구터'에 있던 당이다.

    6 일렛당(七日堂)

    ① 위치 : 마을 서쪽 입구쪽에 있다.
    ② 형태 : 돌담 울타리 안에 신목이 두 개 있고 신목 앞에 돌을 쌓아 제단을 만들었다.
    ③ 제신(祭神) : 강남천자국 용녀부인. 피부병, 복통 및 육아를 관장한 신이다.
    ④ 제일(祭日) : 매월 7일, 17일, 27일
    ⑤ 제의(祭儀) : 큰굿은 없고 각 가정에서 심방을 빌어 제물을 차리고 와서 축원한다.
    ⑥ 당의 특징  : 이 당의 특징은 육아를 관장한 신이니만치 아기구덕이 헐거나 그 아기구덕에서 키우던
                           아기가 죽거나 하면 아기구덕을 이 당에 와 버리는 점과, 제의 때 그릇을 이 당 안에서 깨는
                           일이다. 그래서 지금도 헌 아기구덕이 여러개 뒹굴고 있고, 조선도자기에서부터 현대
                           자기까지 여러 가지 그릇 조각이 하얗게 널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