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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화 | 속담

    설화


    구슬할망당

    옛날 신촌마을 큰물거리에 사는 김사공은 사공질에 퍽 빼어나서 이웃마을에까지 널리 알려진 사람이었다.
    제주에서 올리는 말과 귤, 전복과 비자나무 등을 싣고 진상을 바치러 자주 서울을 드나들었다. 어떤 때는 파도가 거세어서 위태로운 고비를 겪기도 하면서도 진상 바치러 드나드는 일에 뿌듯한 보람을 지니며 지냈다.
    여느때처럼 그는 진상을 잘 바치고 돌아오려고 서대문 바깥 한적한 밤길을 걷고 있었다. 하루밤 묵을 집을 찾으려고 칠흑 같은 길을 걸어가는데, 느닷없이 사람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게 아닌가. 그 소리를 좇아가 보았더니 논두렁에서 어떤 처녀가 혼자 울고 있었다.
    "당신은 귀신인가? 생인인가?"
    김사공의 물음에 답변하는 소리는 분명히 사람의 목소리였다.
    자기는 서대문 밖 허정승의 딸인데, 부모님의 눈에 거슬리어 종들을 시키고, 가마에 억지로 태워지고 여기 팽개쳐 버렸으므로 갈 곳이 없어 운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의 도포자락을 붙잡으며, 자기를 데리고 가서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소녀의 사정은 딱하지마는 자기는 제주사람이어서 곤란하다고 김사공은 난색을 비쳤다.
    "제주라도 좋으니 꼭 데려가 주십시오"
    그녀는 애원하다시피 매달렸다. 당시는 제주사람과 육지사람이 서로 오가지도 못하는 때였지마는, 긍휼심이 남다른 김사공으로서는 차마 냉정히 뿌리칠 수 없어 제주도로 데려오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러면 나하고 같이 가기로 하자"
    잔잔한 명주바다. 사공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도포자락에 그녀를 몰래 숨기고 배에 함께 태웠다. 실바람에 미끄러지듯 배는 잘 달렸다. 그녀를 자기집으로 데리고 간 김사공은 아무도 몰래 방안에서만 지내게 하고 늘 문을 잠가 두었다.
    세월은 흘러 아가씨도 어느덧 열여덟 살이 되었다. 하루는 남쪽 창문을 열어 놓고 유시미 바깥세상을 내다보다가 김사공에게 저 사람들은 무엇하고 소를 몰고 부산히 걸어가며, 머슴들이 등에 진 것은 무엇인가고 물었다.
    "제주사람들은 어느 누구나 부지런히 일해야만 살므로 쟁기를 지고 소를 몰아서 밭을 갈러 가는 것이다"
    북쪽 창문을 열어 한참 바다를 쳐다보던 그녀는 소스라쳐 놀랐다. 반나체의 여인들이 풍덩풍덩 바닷속으로 무자맥질하는 게 아닌가. 도대체 저 여인들은 무슨 때문에 저 차가운 물속을 연거푸 드나든단 말인가? 하도 신비스러워서 "호오히 호오이" 하는 소리는 무슨 소리인가고 물었다.
    "제주에선 바다 또한 밭으로 알고 깊디깊은 물속으로 무자맥질하면서 전복, 소라, 미역을 캐고는 살림에 이바지한다. 바다 또한 뭍의 밭이나 다름없지. 남자도 아닌 여자들이 저처럼 억척스레 바닷속에 뛰어들어 일한다는 건 놀라운 일이지"
    유심히 이 말을 듣고난 그녀는 한참 생각에 잠기더니 테왁, 빗창 따위 해녀 도구를 챙겨 주면 자기도 물질을 하고 싶다고 졸라대었다.
    해녀 도구를 차려 주자 그녀는 이내 물질에 뛰어들었다. 얼마 없어 대상군이 되고 주변의 부러움을 한몸에 모았다.
    근 전복 일천 근과 작은 전복 일천 근을 따들였는데, 그 전복 속에서는 진주가 닷 말 닷 되나 쏟아졌다. 진주 닷 말 닷 되라면 대수로운 일이나 다름없다. 김사공과 그녀는 감격에 겨운 채 백년가약을 맺는다. 행복한 나날을 살다가 어느날 부인은 김사공에게 정색하면서 상의했다. 이처럼 진주를 얻은 것은 천군에 따른 것이니 그 은공을 갚아야 옮을 것이므로 임금님께 진상함이 어떻겠는가는 제안이었다. 진주는 외국에까지 널리 알려진 상품이었다. 김사공도 이에 동의하고 진주 닷 말 닷 되를 임금님께 진상했다. 진주 한두 개만 하더라도 보배로운 일인데 무려 닷 말 닷 되나 진상했으니, 임금으로서도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
    "이 귀중한 진주를, 그것도 단 몇개가 아니라, 닷 말 닷 되나 받았으니 참으로 감격스런 일이로구나. 세상에 이렇게 기특한 일이 어디 있으랴. 무슨 벼슬이라도 좋으니 소원을 말하시오"
    김사공은 상감님의 분부이므로 거역할 수 없다면서 겸손하게 동지벼슬이나 주시도록 했다. 임금은 가상하게 여기면서 동지벼슬을 내어 주고 그 부인에겐 칠색 구슬을 하사라게 되자 '구슬할망'이라 부르게 된다.
    그들 부부 사이에는 딸만 아홉을 낳았다. 구슬할망은 죽기 전에 딸들을 불러앉히고 유언 비슷이 당부했다.
    "너희 부친은 동지벼슬을 받고, 나는 구슬을 하사받아 구슬할망이 되었다. 따라서 이제부터는 자손이 줄줄이 뻗어갈 터이니 명절 때나 기일제사때 고팡으로 상을 바치고 큰굿, 작은굿 치를 때엔 풍악으로 내 간장을 풀어 다오"
    그 뒤에 딸들은 아홉 마을에 시집가고 고팡에 상을 차리게 된다. 점차 그 딸들 자손의 줄이 뻗어갔는데, 구슬할망은 그 자손들을 번창하게 해 주는 조상신이 되었다.
    이 이야기 속에는 제주도의 유다른 사정이 짙게 깔려 있다. 특히 해녀들의 물질이 예부터 귀장한 생업이라는 점과 더불어 귀중한 진주가 등장함은 퍽 주목된다.